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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로부터의 편지
level.3 명의자
  • 2016-03-07 23:35:58
  • 조회수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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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댓글 2

어수선한 출근길 버스에 타고 있던 수현은 머리를 뒤로 기대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뻑뻑한 눈꺼풀이 최근 누적된 피로를 증명하듯 무겁게 느껴졌다. 더욱이 버스 내부는 이상하리만치 건조하고도 

후덥지근한 모순된 공기를 풍기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 자신이 목표하는 ‘그곳’에 도착하면 숨이 탁 트이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수현은 여기까지 생각하며 손에 들고 있던 편지를 꾸욱 쥐었다. 

이 편지를 받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모든 전지전능을 포기하고 순수한 인간으로 살아가기를 갈망했고, 그것을 외쳤다. 후회할 것이라는 슬픈 얼굴을 마주하고도 

자신의 의지를 꺾지 않았다. 그러나 우악스러운 고집이 자만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은 몰랐다.

 

 

능력이 없는 사용자 김수현은 너무나 무력했다.

 

어딘가 겨우 소속되었나 싶으면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까이기 일쑤였다. 

그도 그럴 것이 수현은 어느 새 타인을 ‘사용자 정보’로만 판단하는 색안경을 쓰고 있었고, 그것이 뭐가 문제인지 인식조차 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피지컬도 두뇌도 지나치게 뛰어난 그였으니 주변 사람들의 일처리가 마음에 들 리가 있나. 결국 여기저기 차가운 말만 늘어놓다가 

대차게 쫓겨났기만 했다.

 

덕분에 소위 말하는 집에 틀어박혀 사는 잉여 인간이 되었고, 심심할 때마다 하는 짓은 안솔에게 로또 번호를 묻는 정도였다.

한심하다는 그 얼굴에 ‘왜, 너라면 100억도 가능하잖아? 우리 이걸로 사업할까?’ 라는 말을 던졌다가 날아든 베개에 쳐 맞기도 수십 번. 항상 무료한 일상의 반복이었다.

그런데 그 편지가 날아든 것이다.

 

 

<사용자 김수현. 

얼마 전에 당신이 저를 저주하는 것을 잘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니 괘씸하네? 전역하는 날 소환하다니 빡치잖아, 이거.” 라는 당신의 속마음이 제 머릿속까지 쩌렁쩌렁 울렸지요. 

그 군대라는 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다음에 또 만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패기 넘치는 그 말이 제 가슴에 닿았습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지금 같은 방탕한 생활이 아니겠지요? 나는 언제나 당신이 원하는 대로 수행할 뿐입니다. 

약도를 동봉하였으니 금일 세시, 그곳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야말로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말해주세요.>

 

 

편지봉투에 편지와 함께 들어있던 것은 수성 싸인펜으로 개발새발 약도를 그린 갱지였다. 

그녀의 넘치는 배려심에 감탄하며 수현은 집을 나섰다. 어쩐지 가슴이 뛰었다. 

고저 없는 일정한 톤의 목소리, 기계마냥 감정 없이 무표정한 얼굴. 하지만 눈동자로 모든 것을 말하는 그녀를 만나러 간다. 분노를 꾹꾹 억누르며 글을 쓴 것이 보이지만, 

그 내용 속에 담긴 그녀의 투정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

 

별 볼 일 없는 인간의 삶이야말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현실의 팍팍함이 자신을 옭아매고 결국 ‘평범하게 산다는 것’이 가장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젠 분명히 알았어. 내가 뭘 바라는지.”

 

수현은 작게 중얼거리며 창문에 이마를 대었다. 주변보다 차가운 공기가 뜨거운 머리를 식혀주는 느낌이 들었다. 생각을 정리해야했다. 

좀 더 명확하게 무엇을 소원하는지 말해야 그녀도 이해할 것이다. 천사들보다도 합리적인 척 연기를 했지만 사실 수현은 누구보다 허약하고 의존적인 본성을 지니고 있었다. 

항상 쿨남마냥 직구를 내던졌지만 혹시 상대방이 상처입은 건 아닐까 - 밀려드는 후회에 심장이 벌렁거렸던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스스로는 아직도 심리적 위태로움을 깨닫지 못했지만 말이다.

 

내가 바라는 것....

 

어디선가 작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때? 평범한 삶의 기준이라는 게 있을까?>

 

기준..

 

 

<너는 그 기준을 정해둔 거야?>

 

순간 으스스하고 서늘한 무언가가 발끝에서 기어올랐다. 마치 악마와도 같은 깨달음이었다. 

어떤 기준도 조건도 제시하지 않고 그저 흔한 삶, 인간다운 삶만 외친 스스로에 대한 한심스러움이 복받쳤다. 

나는 지금까지 뭐한 거지. 나는.

 

 

“....!”

 

 

눈이 번쩍 뜨였다. 어두운 버스에는 정적만이 맴돌았다. 

수현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운전기사도, 승객도 없는 버스. 대체 여기는 어디란 말인가. 긴장감에 숨을 졸이며 먼 곳을 응시하자 

희뿌연 안개가 눈에 들어왔다. 칠흑 같은 어둠은 아니지만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이 상황이 답답했다. 

하지만 가슴을 억누르는 숨막힘은 얼마가지 않았다.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기 때문이다.  

 

수현은 장님과 다름없는 현실 너머에서 끊임없이 들리는, 길을 열어줄 듯 말 듯 망설이는 그 춤 사위 같은 움직임을 파악하고자 애썼다. 

회색 안개에 휩싸여 보이지 않는 미래로의 길을 터준 한줄기 빛.

 

아아... 그것은 너였다.

 

내가 왜 몰랐을까. 내가 바라는 평범한 삶에 꼭 필요한 것을.

 

 

“이제야 깨달았습니까.”

 

조심스럽게 풍경을 뚫고 뻗어오는 맨 살에 수연은 저도 모르게 팔을 뻗었다. 목을 끌어오는 포근한 감촉과 가슴에 안겨드는 익숙한 여체를 잘 알고 있었다. 

어차피 계약 관계일 뿐이라고. 이제는 필요 없다고. 매몰차게 내쳤던 존재였다.

 

“사용자 김수현.”

“.....”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좀 더 모습을 보고 싶다. 수현은 포악하게 팔을 잡아당기며 그 주인의 얼굴을 보았다.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 살그머니 깜빡거리는 눈동자, 상처하나 없이 맨들 거리는 얼굴, 하지만 어쩐지 홍조가 맴도는 볼. 

수현이 손을 들어 매만지자 여인은 얼굴을 파묻었다. 보이지 않지만 푸드덕 거리는 날개짓이 그녀의 감정을 대신하고 있었다. 

 

왜 평범한 일상 속에서 거대한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 들었을까. 그것은 인간다운 삶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슴이 휑하니 뚫린 일상에 무슨 의미가 있던가.

수현은 제 품에 뛰어든 천사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이제는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찾았다, 세라프.” 

 

낮게 내뱉은 말에 눈 앞의 그녀가 해사하게 웃었다.

그것은 앞으로 자신이 꿈꾸던 일상보다도 더 행복한 일상이 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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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행하는 로맨스판타지ver로 써보면 어떨까? 싶어서 쓴글입니다

그 많은 여성에게 파묻혔으니 한번쯤 잉여가 되보는 것도 좋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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